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맥스웰 테일러 (문단 편집) === 제2차 세계 대전: 미군 공수부대의 선구자 === 1922년 [[미국육군사관학교]]를 졸업하고 [[포병]][[소위]]로 임관했다. 육군사관학교에서 [[프랑스어]]와 [[스페인어]] 교관으로도 근무했다. [[제2차 세계 대전]]기에는 [[이탈리아 전선]]에서 [[제82공수사단]]에서 [[참모장]]을 지내며 공중강하를 자주 했는데, 여러 [[유럽]]인들과 어울리던 이때 외국어 능력을 잘 써먹었다고. [[파일:external/media.web.britannica.com/47760-004-3B01BB2F.jpg]] [[제2차 세계 대전]] 시절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다가 [[노르망디 상륙작전]]을 앞두고 조직된, [[제101공수사단]]이 미군 공수부대의 아버지로 불린 육군[[소장(계급)|소장]] 빌 리 [[장군]]이 심장마비 증세로 입원하자 공석이 된 101사단장 자리에 보임되었고, [[노르망디 상륙작전]]에서 휘하 공수부대원들과 함께 [[소총]]과 [[수류탄]]으로 무장한 채 낙하산을 탔다. 당시 부사단장인 육군[[준장]] 돈 프랫 장군은 [[글라이더]] 활공 도중 사고로 전사하기도 했는데 이는 [[오버로드 작전]] 전체에서 최고계급 전사 기록이었다고(당시 상황이 영화 '라이언 일병 구하기'에서 재현되었다. 파손된 글라이더 안에서 지프에 탑승한 채 죽어있는 미군 장성을 분대원들이 지나가며 보는 장면). 101사단을 2차 대전 내내 지휘했지만 정작 이미지는 좋지 않았는데, 하필 본국에서 회의 같은 거 한다고 소환해서 끌려갔기 때문이다. 때문에 [[아르덴 대공세]]를 비롯한 수많은 혈투에서 그는 부재 중이었고 부사단장이던 육군준장 앤서니 매콜리프 장군이 사단장 직무대행을 맡기도 했다.[* [[밴드 오브 브라더스]]의 6화에서 사단장 순시가 있을 때도 매콜리프 장군이 나온다.] 때문에 많은 사단 [[장병]]들이 맥스 테일러에겐 딱히 좋은 감정을 지니지 않았고, 테일러 장군도 그것을 알았기에 바스토뉴에서 함께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쉽다며 장병들의 노고를 치하하기도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